말씀따라 걷기

대구대교구 청년국 게시판 입니다.

말씀따라걷기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은 열매를 맺는다. 
복음: 마태오 13,18-23
 
자신을 비운 땅
 
가톨릭 뉴스, 2012년 8월 31일자 기사에 타이페이 대교구 주보에 실렸던 
타이완 산궈스 바오로 추기경의 편지 전문이 실렸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산궈스 추기경의 편지 내용은 그가 돌아가시기 몇 주 전, 
그의 질병이 어떻게 하느님의 선물이었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분이 마음으로 깨닫고 싶었던 것은 
십자가의 비움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비움(필립 2,7)’으로서 
하느님과 더 친밀해지는 신비였습니다. 

하느님은 이 비움을 통한 하나 됨의 신비를 질병으로 알려주셨던 것입니다. 
그분이 당신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하셨고, 
기도와 묵상 중 죽어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종종 나타났다고 합니다. 

동시에, “자신을 비워라, 그러면 하느님과의 일치를 위해 
자신을 비운 예수와 가깝게 지낼 수 있게 골고타 언덕 꼭대기 까지 오를 수 있을 것이다”
라는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이젠 그분의 편지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겠습니다. 
 
“이 환영은 나를 깨우쳤다. 
나는 내가 입고 있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직자의 장백의, 주교반지와 주교관, 추기경의 진홍색 수단, 
이런 것들은 과다로 포장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것들은 원래 자신을 잃게 했다. 

하지만 이런 옷들은 내 일상의 하나가 됐고, 이런 옷들을 벗어던지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느님께서 할 수 있으시다.

지난 6월 말, 가슴에 찬 물을 빼기 위해 입원했다. 
의사는 내 허파에 고인 물을 빼기 위해 이뇨제를 처방했고, 나는 이 사실을 몰랐다. 
미사를 드리는 중에 약효가 나타났다. 

독서를 할 때쯤에 화장실에 가야 했다. 
화장실로 가는 동안 오줌을 지려 심하게 젖었고 마루에 자국을 남겼다.
 
사제품을 받고 57년 동안 미사를 드릴 때 이런 적은 없었다. 
나는 내 권위를 잃었다. 
수녀와 의사, 간호사들 앞에서 숨을 곳을 찾지 못했고, 
이것은 하느님께서 나의 허영심을 고치기 위해 어떻게 시작했는지 보여주는 것이었다.
 
얼마 뒤, 타이베이에서 나는 이틀 동안 대변을 보지 못했고 의사는 완화제를 줬다. 
약효는 한밤중에 나타났다. 
나를 돌보던 남자 간호사를 깨워 샤워실로 데려다 달라 부탁했다. 

샤워장으로 다 가기 전에, 내 속이 비워졌다. 
대변이 나와 바닥에 떨어졌고, 이 간호사가 내 똥을 밟았다. 
그는 행복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신고 있던 슬리퍼와 바닥을 닦으며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중얼거렸다. 
그러고 나서 그는 내 똥 묻은 파자마를 벗기고 나를 화장실 변기에 앉혀 
내 다리에 묻은 똥을 닦으며 어른이 아이를 꾸짖는 것처럼 나를 꾸짖었다.
 
그는 ‘두세 발짝만 더 가면 변기였는데, 그것도 참지 못했느냐? 
이것 때문에 내가 고생했다. 
다음에는 더 일찍 말해 달라’고 당부했다.

나는 내가 한 살짜리 어린애처럼 느껴졌다. 
그의 말은 날카로운 칼로 나에게 다가와 내가 90년 동안 갖고 있던 모든 존경과 명예, 
직함, 직위, 권위, 위엄을 난도질했다. 
나를 다 씻기고 나서 그는 나를 침대에 눕히고 바로 잠이 들었다.
 
나도 잠에 들었지만 곧 깨어났고 아주 편하게 느껴졌다. 
‘자신을 비운’ 예수의 모습이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그가 나를 향해 웃고 있었고 주님께 더 가까이 가자고 초대했다.
 
세 번째 당황했던 순간은 2주 전이었다. 
나는 그때 막 예수회의 병원으로 옮겼다. 
발에 부종이 생겨 의사들은 강력한 이뇨제를 처방해주면서 또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방사선치료를 하러 가던 도중에 약효가 나타났다. 
의료진과 기술진은 내 바지가 완전히 젖은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때 나는 마지막 남은 한 조각 위엄도 잃었다.

이런 당황스러움이 죽을병에 걸려 고생하는 이 90대 노인에게 원기를 회복시켜줬다. 
며칠 만에, 이 당황스러움은 어릴 적 순진함을 다시 가져다줬고 
오랫동안 쌓여왔던 도움 되지 않는 습관을 없애줬다.”
  
외적인 지위와 존경, 사회적 위치 등으로 둘러싸이면 또 그에 합당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립니다. 
그러나 그런 외적인 족쇄들을 하느님 앞에서도 풀지 못하고 
어린이처럼 순박하게 재롱떨지 못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만드는 것이 자아이고 우리가 솎아 내야 할 돌들입니다. 
그 자아 때문에 생기는 세상 걱정이 가지덤불이고 
그것들이 하느님께서 뿌리신 씨앗을 숨 막히게 합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성 요한은 하느님께 ‘멸시와 고통’을 달라고 그렇게 매달렸는지 모릅니다. 
내가 커지면, 내가 높아지면, 내가 더 가지면 
그 땅에서는 어떤 열매도 맺힐 수 없음을 잘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참다운 자유는 무릎을 꿇고 뻣뻣한 고개를 숙일 때 찾아옵니다. 
그렇게 내가 아무 것도 아닌 존재임을 마음으로 느낄 때 
그 순수한 땅에서 하느님의 열매가 송이송이 맺히게 될 것입니다. 
 
좋은 땅이 되기 위해 우리도 고 산궈스 추기경님처럼 
우리 자신을 비워내는 작업을 멈추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좋은 땅을 가진 사람이 느끼는 것은 아마 산궈스 추기경님이 느끼게 되었던 
이런 감정일 것입니다. 
 
“내 몸이 아주 작은 캥거루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 
나는 주님께 내 영성적 질병을 낫게 해 준 것에 대해 감사했고, 
이로 인해 나는 아이처럼 생기를 되찾고 단순해지며 겸손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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